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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2016. 5. 10. 01:51

모두에게.


  이제 너는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통화하고, 다시 만나지만 나는 자꾸만 나쁜 일들을 상상하고 괴로워하고 누나. 안되겠어요. 먼저갑니다. 했던 사람을 이해하고 아주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을 자꾸만 바라보는데 어제는 자꾸만 aujourd'hui, rien. 이라는 말이 생각났고 네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말들을 듣고 나서는 adieu chéri. 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는데 네 말만큼 비참하지는 않았지.

  네가 없는 금요일부터 혼자가 될 텐데 아침에는 병원에 가야 하고 무슨 얘길 듣게 될지 무서워서 자꾸만 바닥을 보면서 걷는데 그래도 어제 너는 활짝 웃었고 나도 그렇게 웃고 싶다는 얘길 건네다가 민망해져서 자꾸만 눈을 감았고 둘이 찍은 사진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지 궁금한데 아무래도 사진 얘길 꺼내기는 좀 그래서 먼저 말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얼음이 다 떨어져서 아무 것도 마실 수가 없는데 도와달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그러다가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참을 수가 없는데 세상엔 당연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는데 나도 그 중 하나였으면 한다고 말한게 언제였더라? 자꾸만 반복되는 이상한 형태의 사랑과 무책임과 정말로 아니라는 말들을 긍정하기로 했고 우리 이건 아주 닮았네 하던 것들은 알고보니 아주 달랐고 나는 억지로 닮은 것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돌아오는 길만 부끄러워지고 잔뜩 찌푸린 시욋길을 걸으면서 자꾸만 네가 미워지고 내가 싫어지고 나는 너를 용서하고 너는 나를 용서하고 그런 우리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런 날 보며 네가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바보같은 일이지만 나혜석과 모윤숙이 주고 받은 글들을 재밌다고 네게 건네고 넌 또 바보같이 그걸 받아들어 날 무안하게 만들고 상황은 내가 만들어도 결정만은 네가 해주길 바라고 그러다 보면 네가 결정한 일이잖아 하면서 무책임한 말들만 늘어놓을거야 다행스럽게도 너는 건강한 사람이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 

  널 만날 때마다 나는 내 바닥을 보고 이젠 바닥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는데 자꾸만 너는 나를 찾아오고 이렇게 바보같이 굴러가는 곳에서 너를 데리고 나갈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네가 남긴 말들이 자꾸만 생각나서 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너는 이제 우리 자주 걷자고 말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지.

  고맙다는 말, 무서운 말들은 조금만 참아주길 주변 사람들에게 날 그런 식으로 소개하지 말아주길 혼자 다니는 내게 자세한 사정을 묻지 말아주길 아침은 잿빛이고 사양은 자꾸만 날 아프게 하는데 너는 자꾸만 나를 찾고 나는 그런 너를 찾고 해가 지면 너는 다시 다른 세상으로 가는데 난 금요일날 병원에 가야 하고 무슨 말을 듣게 될까 무섭고 네가 없는 금요일이어서 더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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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ass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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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2016. 3. 23. 03:23

헝거 보고와서 짧게 적음. 


오랜만에 탄방 메가박스에 갔다. (4년만인가?) 

의자가 알록달록, 아주 예뻤다. 오늘 예쁘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네. 


사회는 개인에게 성원권을 부여함과 동시에, 머물 장소를 정해주고, 입을 옷을 정해주고. 생활 양식을 정해주며 일종의 인격 통제를 시작한다. (개인에게 성원권을 부여하는 과정은 일종의 의례를 요구하는데, 뭐 이건 나중에 자세히.)

 

헝거는 자신에게 부여된 성원권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개인의 이야기.

  사회는 그가 무엇(political status)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그에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비협조적 수감자'로 호명되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국가의 폭력을 그려내는데,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폭력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이미 지젝이 적어놨듯이,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폭력(주관적subjective 폭력)과 우리가 '정상적' 혹은 '일상적'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체제(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가 '제대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폭력(객관적objective- 구조적systemic 폭력)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해서, (이 '사회'라는 것은 수감자에게도 일종의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 포인트.) 수감자-개인에게 머물 장소를 주고, 입을 옷을 정해주며('탈의' 과정은 수감자-개인을 몹시 위축되게 만든다.), 생활 양식을 강요하고 인격 통제를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은 비단 수감자들만 겪는 것이 아니다. 의례를 통해 사회에 편입된 개인들 모두가 겪는 일.) 여기서 저항하는 개인에게는? 보다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신념을 위한 단식이 아닌, 자살을 위한 단식을 택하게 된다. 여기서 명예의 관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싸움의 형태-결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이는 몸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닌, 오로지 (성원권과 인정 투쟁이 키워드일 듯)을 위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회 밖에 있는 자-노예? 적절한 예가 될까?-는 지켜야 할 얼굴도, 명예도 없음. 명예를 위해 싸우지 않는 자, 혹은 그러리라 기대되지 않는 자는 사회질서 바깥에 있는 것.) 모욕과 명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는데...

 

 단식을 선택한 이들은 결국 죽게 되고, 사회-국가-는 그들의 요구조건을 대부분 들어 주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그것(political status)은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얼마나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부분.


일단은 여기까지. 지금은 너무 졸리니 나중에 정리해서 적기로 한다...

 

  그나저나 레드 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정말 놀라운 곡이다. 오늘 아침에 이 노랠 처음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도 듣고 있다. 주세요 달콤한 그 맛 아이스크림 케이크~ 아이! 스크림! 유! 스크림! 요즘 노래들은 참 세련된 맛이 있어서 좋단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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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rass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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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2016. 3. 21. 17:24

감기 때문에 주말을 통째로 날렸다. 금요일에는 헤일 시저 보고 왔다.

감기에 걸렸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있다 보니까 또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어져서 몇몇 친구에게 우는 소리를 하고 말았다. 오늘 일어나보니 그 친구들도 감기기운이 있다고 해서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사랑하지만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에게, 우는 소리가 하고 싶어졌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자꾸 뭔가 생긴다.

그래도 별일 없는 날들이다. 동자승이 나보다는 화끈하게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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